아시아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 비중 1% 미만…속도가 관건
아시아 지역의 디지털 자산 시장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자국 통화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점유율이 1%도 채 되지 않는 현실이 드러났다.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암호화폐 업계의 오래된 진리가, 이번에는 글로벌 결제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다시 한번 증명되고 있다.
왜 속도가 문제인가
기존 국제 결제망인 SWIFT는 수십 년간 안정성을 바탕으로 왕좌를 지켜왔지만, 그 대가는 바로 '느림'이었다. 자금 이체에 며칠이 걸리는 시대에,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가로지르는 결제를 수초 내로 끝내버린다. 문제는 이 속도의 이점을 누가, 어떻게 주도하느냐다. 현재 아시아 시장을 점령한 것은 여전히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들이다. 현지 통화의 디지털화는 이론적 가능성에 머물고, 실행 속도에서 크게 뒤처진 상태다.
달러의 그림자와 지역 통화의 도전
이것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압도적 지위가, 블록체인 세계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의 금융 당국은 디지털 화폐(CBDC)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지만, 규제 장벽과 협의 지연은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빠른 해결책'에 비해 너무나 느리게 움직인다.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이 틈새를 파고들어 사실상의 표준을 선점하고 있다—금융 당국이 회의실에서 규정을 토론하는 사이, 코드는 이미 시장을 장악한 지 오래다.
승부처는 생태계 구축 속도
성공의 열쇠는 단일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전체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에 달려있다. 지갑, 거래소, 결제망, 유동성 풀—이 모든 인프라가 원활하게 연결되어야 진정한 '속도'가 나온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이 경주에서 크게 앞서 나갔다. 아시아의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이 1%의 벽을 깨고 나가려면, 단순히 동등한 기술을 만드는 것을 넘어, 기존 네트워크 효과를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 제안과 폭발적인 채택 속도를 보여줘야 한다. 결국, 가장 빠른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이것이 암호화폐 시장의 냉엄한 법칙이다. 그리고 어떤 중앙은행 총재도 이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그들이 여전히 '안정성'을 논하는 동안, 시장은 이미 '속도'로 투표를 마쳤다.
[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웹3 전문 리서치사 타이거리서치가 ‘아시아 스테이블코인 현황’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보고서는 3000억 달러 규모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아시아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의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달러 중심 생태계가 굳어지기 전 대응 속도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2026년 2월 기준 전체 스테이블코인 약 99%는 달러에 연동되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니어스 법(GENIUS Act)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을 미국 국채로 보유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국채 판매 채널이자 달러 패권 유지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민과 기업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수록 자금이 자국 금융 시스템이 아닌 미국 달러 패권 유지에 쓰이게 된다며, 화폐 패권을 내줄 수 없다는 불안감이 아시아 각국의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동기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홍콩은 개방적 규제로 글로벌 발행사를 빠르게 유치하는 전략을 택했다. 싱가포르는 2023년 8월 자국 통화와 G10 통화 발행을 허용하는 규제를 확정했고, 스트레이츠엑스(StraitsX), 팍소스(Paxos), 리플(ripple), 써클(Circle) 등 6~8개 사업자가 이미 라이선스를 취득해 발행을 시작했다. 홍콩은 2025년 8월 참조 통화 제한 없는 독립 법률을 시행했으나 36개사가 신청했음에도 정식 인가 발행사는 아직 없어, 법 제정과 실제 시장 가동 사이 시차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통화 주권 보호를 위해 민간 참여를 제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은 2023년 6월 아시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하며 발행 자격을 은행, 신탁회사, 자금이체업자로 한정하는 ‘은행 전속 모델’을 채택했다. JPYC가 2025년 10월 첫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했고,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 미즈호(Mizuho) 등 3대 메가뱅크도 공동 발행을 추진하며 보수적 틀 안에서도 실질 발행 단계에 진입했다. 중국은 민간 발행을 전면 금지하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e-CNY)로 완전 대체하는 전략을 택해, 2026년 2월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국내외 무허가 발행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한국은 2025년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통과됐지만 발행 주체를 놓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 이견이 이어지며 제도 완성이 지연되고 있다. 금융위는 핀테크 포함 민간 참여 허용을, 한국은행은 은행 50%+1주 컨소시엄 구조를 주장한다. 규제 바깥에서는 아이큐(IQ)와 프랙스(Frax)가 공동 개발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Q가 글로벌 디파이 시장에 원화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으며, 네이버페이와 업비트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을 구상하는 등 대형 플레이어들은 법 제정 후 발행에 나설 준비를 마친 상태다.
보고서 저자인 윤승식 타이거리서치 리서치센터장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기축으로 한 글로벌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은 세밀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지만 신중함이 지체로 이어지면 안 된다”며 “네트워크가 굳어진 뒤 참여하는 것과 초기부터 자리를 잡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에 결국 속도의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