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베이스 vs 리플: 암호화폐 M&A 전쟁이 그리는 다음 판도
거대 합병이 결정하는 암호화폐 업계의 권력 재편. 코인베이스의 전략적 인수와 리플의 기업 인프라 공략이 충돌하는 가운데, 누가 다음 주자로 부상할 것인가?
암호화폐 거래소와 블록체인 기업들의 M&A 열전이 업계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유동성 확보부터 규제 회피 전략까지 - 각자의 숨은 목표를 파헤친다.
월스트리트 출신 분석가들은 "이번 M&A 바람은 2021년 ICO 열풍의 재탕"이라 비아냥거리지만, 체계적인 성장 전략을 가진 플레이어만이 생존할 것이다.
[블록미디어]
[블록미디어 권은중 전문기자] 내가 제일 좋아하고 경외하는 와인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서 나오는 바롤로다. 프랑스 부르고뉴도 좋아하지만 그 핵심적인 맛에 접근하기에는 비싼 가격 탓에 쉽지 않다. 반면 바롤로는 10여만원을 쓰면 숙성, 떼루아, 양조가의 숨결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최고의 가성비다. 만약 이런 즐거움을 부르고뉴에서 즐길려면 병당 50만~100만원은 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바롤로를 사서 모은다. 물론 바롤로가 나의 이런 마음에 늘 보답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롤로 남쪽 언덕 리스테(LiSte)의 밭에서 나온 2014년 다밀라노를 어렵게 수소문해 구입했다. 가격은 10만원 후반대였다. 하지만 뚜껑을 따서 몇시간 브리딩을 하고 그래도 안 열려서 디캔팅을 하고 온갖 수선을 다 떨었지만 결국 열리지 않았다. 10여년의 세월은 바롤로에게는 긴 시간이 아니었다. 2035년쯤 열었어야 하는 와인이었다. 나에게 “메롱”하고 혀를 내미는 리스테밭의 정령이 보였다. 이정도면 절망적인 짝사랑이다.
그런 바롤로다 보니, 까 비올라 까비오트 2020(Ca‘ Viola BARolo Caviot)에 거는 기대는 1도 없었다. 비비노 4.3이라는 점수도 사람들의 거짓말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어디 가져가서 수선을 떨다가 망신을 당하느니 내가 그냥 처리하자하고 와인 고픈 어느 늦은 밤 까비오트를 땄다. 역시 단단했다. 네비올로 품종이 주는 강한 단단함이 훅 느껴졌다. 역시. ‘2020년 바롤로’라는 건 거의 모순형용이라는 예상이 맞았구나라고 또 한번 좌절했다.
이날 내가 밤 11시에 바롤로를 딴 것은 요즘 내가 와인에 조린 소고기 스튜를 만드는데 재미를 붙인 탓이다. 집에 소고기 스튜가 있으면 레드 와인 마시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내가 최고로 꼽는 레드와인 안주는 레드와인에 소고기를 졸인 뵈프 부르기뇽(bœuf bourguignon)이다. 이탈리아 말로는 브라자토 디 만조(brasato di manzo)라고 한다. 뵈프 부르기뇽 한냄비가 스테이크 열접시보다 와인 마시기에는 훨씬 낫다.
하지만 딱 두잔을 마시고 ‘그럼 그렇지’하고 체념하고 까비오트에 코르크를 끼웠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 남은 뵈프 부르기뇽과 바롤로를 처리할 요량으로 다시 까비오트를 마셔봤다. 반전이었다. 산딸기잼에 장미향에, 묘한 흙냄새에, 연필심맛까지 느껴졌다. 50만원짜리 부르고뉴 피노 누아도 울고갈 맛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바롤로의 정령이라도 와인에 깃든 것일까? 다시 한잔 마셨다. 너무 맛있었다. 감동이었다. 2020년 와인이 어떻게 이런 맛이.
땡처리할 생각으로 딴 와인이었지만 나는 친구들을 불러 모우기로 했다. 단톡방에 “여차해서 오늘 밤 벙개를 하려하니 와인을 마실 사람 우리 동네 근처로 와라”고 올렸다. 유난 맞다. 그래도 이 멋진 바롤로 맛을 나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다.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나포함, 5명이나 모였다. 멀리 일산에서 온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잘 보일 마음으로 와인을 진공처리해서 냉장고에 넣어 놔두었는데 이게 패착이었다. 혹시 그 사이 정점을 찍고 사그러질까 두려웠던 탓이다. 결가적으로 까비오트가 다시 피어나는데 1~2시간이 걸렸다. 모임에서 마셨던 차가운 첫잔은 내가 어젯밤 마셨던 첫잔의 맛과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 더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다. ‘애써 내가 피어났는데 나를 이렇게 냉대해?’라는 폭풍같은 분노가 들리는 듯 했다.
어찌어찌 어르고 달래 향이 피어나길 기다렸다. 내가 함께 가져간 스페인 템프라니요 란(LAN) 리제르바는 어찌 그리 깨발랄한지. 그 진한 맛탓에 나의 까비오트 바롤로 맛이 해쳐질까 우려됐다.
2시간쯤 지난 저녁 8시쯤이 되자, 아까 점심 때 느껴졌던 베리맛과 장미향이 올라왔다. 하지만 흙내음과 연필심 맛은 올라오지 않았다. ‘어찌 이렇게 까탈스럽고 미묘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까비오트는 모던 바롤로다. 1만리터 가량의 커다란 슬로베니아 오크통에 3년을 숙성시키는 고전적인 바롤로와 다르게 프렌치 225리터 오크통에 숙성한다. 포도껍질과 나뭇가지를 포도즙과 함께 우려내는 침용기간도 보름 정도로 절반에 불과하다. 1980년대부터 프랑스 부르고뉴와 보르도 와인의 제조법을 적극 도입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면 와인의 떫은 맛을 좌우하는 탄닌이 적게 우러나 좀더 발랄한 바롤로가 된다. 그렇지만 내가 많은 모던 바롤로를 마셨지만 이렇게 뚜렷하게 피어나는 와인은 처음이었다. 그런 까비오트 바롤로가 세상 게으른 나를 벙개모임까지 열게 만들었다.
2차 수제맥주까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까비오트 와인 빈 병이 나에게 “잘했어. 와인집사”라고 그제서야 칭찬을 해주는 것 같았다. 세상 고단하고 남들이 보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와인집사의 하루였다. 하지만 행복했던 하루였다.
* 권은중 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